머물지 않고 흐르는 모든 것들은 아름다웠다. 고여 있지 않아 늘 새롭고 싱싱하다. 그미도 때때로 흐르고 싶다는 간절한 욕망을 느꼈다. 청정한 상태로 머물다가 언젠가는 그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는 것, 공기 중에 떠도는 한 톨의 먼지가 되어 하늘로 스며든다는 것은 얼마나 신비하고 아름다운 현상인가. p.99~100열다섯 살이 된 초희의 함이 들어오는 날 비가 내렸다. 초희의 아버지 허엽은 물론 어머니 김 씨도 내리는 비를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미신을 믿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꺼림칙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비가 내렸어도 무사히 함을 받고 손님맞이를 치르고 난 깊은 밤, 누군가가 안채 용마루에 올라 시가에서 보내준 초희의 녹의홍상을 찢어발겼다. 잠을 이루지 못해 잠깐 나왔던 초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