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그것도 인생이라고 말해주길 원해." 2권 p.207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20대 중반의 네 남자가 있다.배우를 꿈꾸는 잘생긴 윌럼은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다. 건축학을 전공한 맬컴은 회사에 다니면서 부유한 부모님 덕분에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제이비는 잡지사에서 일하면서 언젠가 자신의 예술적 능력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나타나길 희망한다. 세 사람보다 두 살 어린 주드는 로스쿨을 마친 뒤 미연방지검에서 검사보로 일한다.대학 시절 내내 룸메이트였던 그들은 서로 다른 인종에 전공도 달라 졸업 후 각자 자리를 잡아가느라 바빴지만, 가장 친한 친구 사이라는 건 변함이 없기에 자주 만나며 함께 어울린다.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시간이 있어서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유일하게 주드만은 가장 가까운 그들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았다. 다리를 왜 저는지, 언제부터 그랬는지 말하지 않는다. 남녀 모두에게 호감을 주는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어도 그 누구도 친구 이상의 선을 넘어오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겐 인사나 다름없는 포옹과 키스, 심지어는 팔이 닿는 것조차 왜 두려워하는지 절대 말하지 않는다.어린 시절 행복을 정의할 수 있었던 기억 같은 건 없었다. 어린 시절은 온통 비참함이나 공포, 그리고 비참이나 공포의 부재뿐이었고, 그가 필요했고 바랐던 건 그저 후자의 상태뿐이었다. 1권 p.135처음엔 이 소설이 네 남자의 사회적인 성장에 대한 내용인 줄 알았다. 대학을 졸업한 네 남자는 아직 그 어떤 것도 이뤄내지 못했지만 자신만만했고, 가끔은 불안해할 때가 있긴 했어도 조금씩 조금씩 꿈을 이뤄가며 인생을 살고, 우정도 유지하는 그런 내용일 거라 예상했다. 책 뒤편에 쓰인 글로 주드가 그 중심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과거에 겪었을 사건으로 다리를 절게 됐어도 여전히 삶을 살아가는 그런 희망적인 소설일 것 같았다.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이 소설은 10대 시절에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사건들을 겪은 주드가 온몸에 남은 흉터와 정신적인 트라우마, 끊임없는 고통을 안고 죽고 싶어 하면서 살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주드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지기 전까지 대충 예상은 할 수 있었다.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그가 수도원으로 보내져 어린 시절 내내 수사(修士)들에게 맞으면서 교육을 받았다는 점에서 그랬다. 하지만 말을 듣지 않으면 매를 맞는 생활이 차라리 나았다는 걸 알게 된 건 루크 수사가 언급되면서부터였다. 유일하게 때리지 않으며 칭찬하는 말, 다정한 말,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는 사람을 어린 주드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사랑이었으니 믿는 게 당연했다. 그렇게 루크 수사를 믿으면서 주드는 천국을 꿈꿨지만 그건 지옥이었고, 몇 년이 지난 후에 겨우 벗어났다고 생각했을 때 다시 트레일러 박사를 만나게 됐다.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8살밖에 되지 않은 그 어린아이를 속여서 지옥에 떨어뜨리고선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니, 짐승만도 못한 더러운 쓰레기였다. 그 부분을 읽는 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모른다. 이런 지옥이 도망치고 싶을 만큼 끔찍했어도 주드에겐 루크 수사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선 트레일러 박사에게 거의 납치되다시피 한 주드의 인생이 가엽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라 괴로웠다.그는 대단히 운이 좋았다. 그는 사람들이 꿈꾸는 어른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오래전 있었던 일들을 고집스레 곱씹고 되새길까? 왜 그냥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걸까? 왜 과거에 그렇게 경의를 표해야 할까? 왜 거기서 멀어질수록, 기억이 점점 덜해지는 게 아니라 더 생생해질까? 2권 p.59그들이 주드의 몸과 마음에 새긴 상처는 너무나도 깊었다. 그래서 주드는 좋은 친구들을 만났어도, 친하게 지낸 로스쿨 교수 해럴드와 아내 줄리아가 서른 살이 된 주드를 입양하고 싶다고 말해도, 친구들의 친구와 가족들이 주드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표현하고 걱정해도 그걸 온전히 믿질 못했다. 언제든 버려질 거라고, 자신이 15살 때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그들이 알게 되면 더러워하며 실망해서 떠날 거라고 생각하며 습관적으로 자해를 했다. 그리고 행복하고 즐겁게 보낸 날 밤에도 화장실에서 팔을 그었다. 이 행복은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일깨우면서 말이다.주드의 삶, 과거를 읽은 뒤에 나는 희망을 꿈꿨다. 어릴 때 씻을 수 없는 경험을 한 사람들을 소재로 한 내용의 소설이나 영화에서처럼 주드도 그런 삶을 살았지만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그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으니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다가온 어떤 남자에게 마음을 열었던 주드가 또다시 상처를 받은 사건이 일어나 화가 나서 가슴이 답답해졌어도, 세 친구들 중 가장 사려 깊고 주드와 가까웠던 윌럼이 그토록 걱정하던 마음이 사랑이었다는 걸 깨달아 두 사람이 어렵게 이어진 이후로는 회복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그런 내 생각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점점 깨달아갔다. 내가 여태껏 읽은 소설, 감상한 영화에서의 희망이 이 소설엔 없었다. 주드에겐 고통만 있었다. 자신의 몸은 치욕스러웠고, 기억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짐승이었다. 살아있는데도 사는 게 아닌 삶이었고, 죽음만이 유일한 해방이었다."내가 배운 한 가지는 아직 그 일이 생생할 때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거야. 아니면 절대 이야기하지 않게 될 거야. 어떻게 그 이야기를 하는지 내가 가르쳐줄게. 왜냐하면 더 오래 기다릴수록 그건 점점 더 힘들어질 테고, 안에서 곪을 테고, 넌 언제나 네 잘못이라고 생각하게 될 테니까. 물론 그 생각은 잘못된 거지만, 그래도 넌 언제나 그 생각을 할 거야.(……중략)너한테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할 너만의 방식을 발견하게 될 거야.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다면 그래야 해. 하지만 네 인생은 ─ 네가 뭐라고 생각하든 간에 하나도 부끄러워할 거 없어. 그리고 그 어떤 일도 네 잘못은 아니야. 그거 기억해줄래?" 1권 p.156~157하루하루 시간이 더해져 고통 속에서 삶을 이어갔지만 그럼에도 행복한 일들은 있었다. 괴로움과 행복이 늘 주드의 삶에 공존했어도 이제는 행복이 점점 더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 안도했다. 그러다 이번엔 주드가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사건이 일어나면서는 작가를 원망했다. 안 그래도 괴로운 사람에게 자꾸만 행복과 희망을 빼앗아가서 대체 어디까지 할 작정이냐고, 그만 좀 하라는 생각을 했다.그런데 계속 읽다 보니 가상의 캐릭터인 주드가 마치 실제로 그런 일을 겪은 사람들의 모습 같았다.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되는 사건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피해자들은 주드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고통으로 가득 찬 실존 인물의 인생을 쓴 글을 읽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실제 피해자들이 이런 지옥 속에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너무 괴로웠다. 고통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차라리 죽는 게 나은 삶이 어떤 것인지 가늠하지도 못하면서 괜찮아질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한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희망을 품었다는 것도 죄스러웠다.천 페이지가 넘는 책 속에 담긴 인생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주드의 고통과 인생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걸 보고 싶어서 괴로워도 꾸역꾸역 읽을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흡인력이 굉장해서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울다가 안도하다가 화를 냈다가 다시 희망을 품었다가, 마지막 100여 페이지를 읽을 땐 콧물까지 흘리면서 울다가 잠깐 멈춰 진정하고 다시 읽어야 했다.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검색을 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는데 한번 시작하니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작할 때 각오를 하고 읽어야 했던 책이었다. 물론 그 사실 알았더라도 나는 이 책을 읽었을 것 같다. 그리고 괴롭지만 언젠가는 다시 이 책을 읽고 싶어질 것 같다.
천 페이지를 압도하는 폭풍 같은 서사
2015년 맨부커상 최고의 화제작
이 소설을 소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너무나 흔한 관용구대로 결코 손에서 놓을 수 없다 고 말하는 것이다. 독자를 두렵고 불편하게 하면서도 사로잡는 소설을 묘사할 더 적절한 표현은 없다. _커커스 문학상 선정단
영미권을 대표하는 문학상 맨부커상과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에 나란히 오르고,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가디언] [월스트리트저널]을 비롯한 25개 언론사에서 ‘올해의 책’으로 꼽은 화제작 리틀 라이프 가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영국과 미국의 대표 문학상 후보에 선정되기 전부터 독자들 사이에서는 밤을 새워 읽었다 천 페이지가 더 길었으면 하는 소설은 처음이다 눈물이 나 몇 번을 읽다 멈춰야 했다 충격적이고 가슴 아프다 읽는 내내 매일 밤 이 소설에 관한 꿈을 꿨다 같은 리뷰와 함께 이미 입소문이 퍼진 작품으로, 맨부커상 후보작으로 선정된 후 이례적으로 홈페이지에 응원 댓글이 달리며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어린 시절 끔찍한 학대와 폭력의 트라우마를 간직한 비밀스러운 인물 주드의 이야기를 담은 리틀 라이프 는 또한 그 소재의 선정성과 가차 없음으로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품이 되기도 했다.
현대 소설로는 드물게 요약본과 해설서가 등장하고, 서평 사이트 ‘굿리즈’에 4만 명이 넘는 독자들이 별점 4점 이상의 평점을 남기고 있으며, 영화 [캐롤]의 배우 루니 마라가 추천 도서로 꼽는 등, 출간된 지 일 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독자들의 가슴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1 권
1부 리스페너드 스트리트 9
2부 포스트맨 125
3부 허영 313
4부 등식의 공리 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