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여행의 이유

apuj 2023. 9. 20. 13:03

어느 순간부터인가 여행에서의 사진과 글을 엮어 책을 내고 또 다시 여행을 떠나는 삶을 사는 이들이 증가했다. 다분히 안정적인 직업을 절대적 진리 마냥 여겨온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대단한 용기가 아니고서야 쉽사리 선택할 수 없는 형태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따르는 법이다. 여행작가를 꿈꾸는 이들을 지원하는 기관이라니. ‘여행작가 양성교육기관’이라는, 지은이에 적혀 있는 기관을 설명하는 문구를 보았을 때 나의 가슴은 설렜다. 모든 이들이 이와 같은 기관의 교육 과정을 이수한 건 아닐 테지만, 부쩍 증가한 기록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책은 교육을 수료한 이들이 남긴 일종의 성과물이었다. 단순히 교육에만 참여한 이들에겐 주어지지 아니 한 ‘저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실제 여행을 다녀와 기록을 남긴 이들에게 주어졌다. 여행 떠나는 것 자체가 쉽진 않다. 어찌저찌하여 여행을 다녀왔을지라도 기록을 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책에 실린 글의 주인공들은 실제 여행을 다녀왔고, 기억이 흩어지기 전에 배운대로 기록으로 남겼다. 그들에게 이 책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떠나고픈 마음은 지금도 간절하지만 대리만족이라도 할 양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가깝게는 우리나라 안에서의 여행이었고, 몇몇 이들은 큰맘 먹고 바다 건너 해외로 향했다. 이왕이면 남들이 안 가본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디디는 게 더 좋으리란 게 나의 생각이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어디가 됐건,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했다. 돌아갈 곳이 있는 상태에서 일상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여유를 즐기는 것 자체가 충분히 의미 있는 행동이었다. 여행의 이유 또한 제각각이었다. 오로지 직장에서의 성공만을 바라보며 달린 지난 날이었는데, 해고라는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홀로 여행을 떠난 이도 있었다. 은퇴 후 제2 의 삶을 준비 중인 아버지와의 여행을 떠난 딸, 소중한 가족과 함께 여행을 즐긴 이들도 보였다. 장소와 함께하는 이들이 다른 것 이상으로 기록의 방식도 달랐다. 어떤 이는 자신이 방문한 장소를 순서대로 나열하고 서술하는 방식을 택했다. 직접 장소에 가 바라볼 수 없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아마도 다수의 여행 관련 책자가 취한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 아닐까 싶다. 보다 개인의 감정에 충실한 글도 있었다. 현재 자신이 처한 어려움이,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어느 순간 나는 저자와 동일 인물이라도 된 것 마냥 글에 담긴 감정들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이들과 같은 장소를 같은 방식으로 여행했을 때 나의 글은 어떤 형태를 취하고 있을지, 상상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글과 함께 등장한 사진도 나에게 자극을 주었다. 나 또한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외장하드에 고이 잠들어 있는 사진들을 다시 들춰보고픈 충동이 일었다. 특히, 아직 가보지 못한 장소를 담고 있는 사진이 실린 페이지에는 시선이 오래도록 머물렀다. 평면 안에 담긴 풍경도 이토록 아름다운데, 이를 직접 두 눈으로 바라보면 어떤 감정이 일렁일지, 한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 이렇게 적고 나니 마냥 여행을 찬양한 듯해 민망하다. 사실 여행은 고행이다. 입에 맞지 않는 먹거리, 불편한 잠자리, 적잖이 소요되는 돈까지. 이 모든 걸 감수할 용기가 주어질 때 비로소 우린 떠날 수 있다. 한 번 떠나본 사람에게 다음 떠남을 결심하는 일은 한결 쉬워진다. 기꺼이 중독되고 싶다. 몸의 편안함을 버릴지라도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다면. 그리고 무어가 됐건 글과 사진으로 남길 수 있는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므로. 덧붙임. 얼마 전 유명 작가가 이 책과 동일한 제목의 책을 한 권 냈다. 서평을 작성하기 위해 검색을 했더니 그 책이 먼저 등장했다. 떠나고픈 마음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는 모양이다. 그런 것으로 보아 굳이 떠나야만 하는 이유를 들어가며 내 자신을 설득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든 여행은 정당하기에.

그냥 훌쩍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서, 낯선 곳에서 신선한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서… 우리는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여행을 한다. 여행의 이유 는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살아가고픈 33인의 ‘여행의 이유’를 묶어놓은 책이다. 최갑수 여행작가가 이 책 서두에 밝힌 것처럼 여행은 사실 ‘힘들고 피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그 사이사이에 벼락처럼 내리는 행복의 순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입이 쩍 벌어지는 절경 앞에서, 낯선 이들의 뜻밖의 친절 앞에서, 여행 동반자의 진심으로 행복한 얼굴 앞에서 여기 오길 참 잘했다 는 말이 절로 나오는 순간, 여행에 동반되는 다소의 피곤과 짜증과 힘든 과정이 한꺼번에 스르륵 녹아내린다. 그렇게 우리는 또 다른 여행을 꿈꾸고 계획하고 떠나게 된다.

머리말
프롤로그_ 나는 여행을 했고 인생을 배웠다_ 최갑수
01 두고 온 나를 찾아 떠나는 ‘거꾸로 여행’_ 고두현
02 루이지애나, 그리운 그녀_ 명로진
03 거짓말처럼 아름답고 누추하고 생경한……_ 최병일
04 초원의 바람을 느껴보셨나요_ 김명희
05 셸 위 댄스_ 김미애
06 조금씩 화해하는 청춘_ 김연희
07 그리움을 찾아 떠나는 길에 서서_ 김지은
08 56시간의 바다_ 김하늬
09 잠깐의 완벽한 자유_ 류진창
10 여행, 커피꽃으로 피다_ 박진옥
11 자유를 향한 길을 찾아서_ 송기원
12 힐링하기 좋은 ‘신원휴양림’_ 송성윤
13 하루, 원 없이 즐기기_ 온새미
14 어부림의 낮달_ 유영희
15 나에게로 오는 길, 여행_ 이경선
16 예술과 동화의 도시 카셀_ 이경주
17 우연한 만남을 계획적인 만남으로, 쿠바_ 이명구
18 바람을 만나러 간다_ 이문성
19 죽은 듯 살아있는_ 이서현
20 ‘서서 자는 나무’가 ‘21세기 유목민’으로 걷기 여행을 시작하기까지_ 이수빈
21 바다 위 도시_ 이왕재
22 하이랜드 모험기_ 이지현
23 운동주 시인의 자취를 따라서_ 전정옥
24 남도의 여름빛을 그리다_ 정봉숙
25 내 인생 첫 번째 트레킹_ 정시영
26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을 수 있다_ 정아영
27 한없이 투명한 게라마 블루를 찾아서_ 정윤주
28 아빠와 딸 사이_ 정진영
29 모래바람 속으로 사라진 사내_ 최치현
30 여행 바다, 푸른 햇살 헤엄치는 물고기처럼_ 한미숙
31 태안에서 만난 세 명의 나_ 한흥호
32 행복 만들기_ 홍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