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
행간
다시 아감벤을 읽었다. 10년전 쯤인가 처음 아감벤이 쓴 글을 읽었다. 민주주의는 죽었다 였다. 다른 저자들의 글도 인상적이었지만, 유독 눈에 띄는 아감벤의 글이었다. 그는 분명 글을 쓸 줄 아는 지식인이다. 다시 말해, 지식뿐만 아니라 글쓰는 재주까지 탁월하다는 뜻이다. 몇해전 불과 글 을 읽으면서 그가 작가가 글을 쓰기 전, 중, 후의 마음가짐과 자세에 대해 깊은 생각을 가진 적이 있다. 행간 은 그보다 이전의 책이다. 우연히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읽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감벤의 글을 읽다보면 그가 유독 집요하게 강조하는게 있다. 바로 有 와 無 다. 풀어 말하면, 비현실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잡히는 것과 잡히지 않는 것. 등 아감벤은 그 사이의 간극과 연결을 살피고 있다. 이 책은 비현실적인 것에 주목해야만 현실적인 것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라는 명제를 가지고 출발한다. 상실 과 소유 , 거주자 와 피난자 , 시 와 철학 등 대비되는 개념들의 결합과 분리를 고찰하면서 파생되고 생성되는 아니 어쩌면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본래의 의미를 찾아내려 애쓴다. 그는 책 서문에 단테의 <속어 속에서의 설득력에 관혀여>를 인용한다. 모든 예술의 피난처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행간 (STANZE) 을 책의 제목으로 사용한 것도 단테의 책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책의 구성은 ,1부 에로스의 유령.2부 오드라덱의 세계.3부 말과 유령4부 퇴페한 이미지. 이렇게 나뉘는데 여기에릴케, 휠덜린에서부터 단테까지, 수세기전 서사시의 유령이론에서부터 현대의 기호학까지 총망라한 지식이 더해진다. 방대하고 심오하다는 표현이 왠지 부족해 보일 정도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 책을 서너번 읽었지만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리뷰 쓰기가 참 망설여졌다. 내가 제대로 읽은 걸까? 하는 의구심과 나의 부족한 지식 때문이었다. 살아온 세월의 경험치만큼 읽히는 책이 있고, 아는 만큼 읽히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역시 그렇다. 한 장 한 장 최고의 집중력으로 정독을 해야 하는 책이다. 더불어 아감벤의 다른 저서들도 함께 읽어야 하는 그 이해도가 높아지는 책이다. 조르조 아감벤의 다른 저서인 호모 사케르 , 사물의 표시 , 내용 없는 인간 , 내전 , 빌라도와 예수 , 왕국의 영광 등 말이다. 책을 읽고 나름의 얻은 지식과 깨달음(?)을 나열하고 싶은 강한 욕망이 일지만, 이건 이 책에 대한 아니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굳이 사족이 될 말들을 달지 않겠다. 다만, 아감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거나, 다른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하신 분들을 위해 하나의 링크를 연결해본다. (검색의 수고와 시간을 덜어드릴 겸~ ^^) 약 26분 정도 되는 길이의 강의 내용입니다. 아감벤의 핵심개념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니 잠시 시간을 내서 보시면 기본적인 방향이 잡히고 이해가 되실 거라 생각되어 연결해봅니다. https://youtu.be/2_joVuP8ePs
객관주의와 합리주의로 물든 우리 시대에 대한 성찰!
분열된 언어를 넘어 진정한
기쁨의 여정으로 향하는 길을 제시하다
누군가 그 자체로 비현실적인 것,
소유 불가능한 것과 관계를 맺고 소통할 줄 안다면
그에게는 현실과 긍정적인 것에 접근하고
그것을 향유하고 소유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우리 사회는 소위 ‘빅데이터’ 사회라 할 만큼 너무나 많은 양의 지식과 정보로 이루어져 있다. 지식과 정보는 여러 상품과 학문 등으로 일상에 스며들어 이윤을 창출하는 데 사용되고 있고,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해야 하기 때문에 보다 다양하고 정확한 정보, 객관적이고 계량화하고 명확하게 검증할 수 있는 정보를 요청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현실은 일견 타당하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내면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숫자로, 하나의 담론으로, 하나의 프레임으로 제한하고 규정지으려는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을 발견한다. 객관주의와 합리주의에 물들어 늘 정확하게 분석하고 예측하고 그것을 토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가장 현실적이지만 현실적이지 못한’ 현대인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자 현재이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삶이 배제된 삶과, 인격이 사라진 앎과 지식, 무엇을 알고 무엇을 기뻐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부재’이다. 늘 관계하고 있지만 그 관계는 연결되지 않은 일방적 관계이며, 결국 우리는 그 무엇과도 소통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이윤과 성장의 논리로, 하나의 담론, 하나의 프레임 안에 가두고 진정한 앎과 기쁨의 길로 향하지 않는 잘못된 문화 속에 현대인이 살아가고 있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계속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회에서 과연 인간다운 삶이 가능하겠는가?
행간이라는 비현실적인 것의 차원을 분석하는 조르조 아감벤의 텍스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현실에 기인한다. 우리의 문화를 위해, 인간에 대한 이해를 위해, 잃어버린 진정한 앎과 기쁨을 회복하는 하나의 시선으로 당당히 마주하고 진실한 물음을 던져야 하는 것이다. 서양문화의 근간을 이룬 유령이라는 테마의 얼굴을 분석함으로써 인간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 안에 내재된 유령의 접근 불가능성을 규명하고, 필연적인 허구와 완성된 현실이라는 허구 사이에 유령의 세계가 부재의 형식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 그것이 바로 행간 의 저자 조르조 아감벤의 진실한 물음이자 ‘삶’이며, 독자인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과제’일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행간’을 읽는다는 것이 어떤 대상을 통과하는 것이자 대상과 관계하는 것이며, 인격적 주체로서의 고유한 인식을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현실’로 확장해가는 전복적 행위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서문
1부 에로스의 유령
1. 정오의 악령
2. 멜랑콜리아 I
3. 우울증에 빠진 에로스
4. 잃어버린 물건
5. 에로스의 유령들
2부 오드라덱의 세계: 상품 앞에 선 예술작품
1. 프로이트 혹은 부재하는 대상
2. 마르크스 혹은 만국박람회
3. 보들레르 혹은 절대상품
4. 보 브럼멜 혹은 비현실의 도용
5. 팽쿠크 부인 혹은 장난감 요정
3부 말과 유령: 1200년대 사랑의 시에서 나타나는 유령 이론
1. 나르시스와 피그말리온
2. 거울 앞의 에로스
3. 환상적 영
4. 사랑의 영
5. 나르시스와 피그말리온 사이에서
6. 결코 끝나지 않을 기쁨
4부 퇴폐한 이미지: 스핑크스의 관점에서 바라본 기호학
1.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2. 고유한 것과 고유하지 않은 것
3. 저항선과 상처
후기
옮긴이의 말
인명색인